1.
이 세상에서
살구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쓰고
복숭아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쓰고
꽃이 만들던 그 섭섭한 그늘 자리엔
야휜 햇살이 들다가 만다고 쓰고
꽃 진 자리마다엔 또 무엇이 있다고 써야 할까
살구가 달렸다고 써야 할까
복숭아가 달렸다고 써야 할까
그러니까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
희망적으로 써야 할까
내 마음속에서
진 꽃자리엔
무엇이 있다고 써야 할까
다만
흘러가는 구름이 보이고
잎을 흔드는 바람이 가끔 오고
달이 뜨면 누군가 아이를 갖겠구나 혼자 그렇게
생각할 뿐이라고
그대로 써야 할까
2.
꽃 진 자리에 나는
한 꽃 진 사람을 보내어
내게 편지를 쓰게 하네
다만
흘러가는 구름이 잘 보이고
잎을 흔드는 바람이 가끔 오고
그 바람에
뺨을 기대보기도 한다고
나는 오지도 않는 그 편지를
오래도록 앉아서
꽃 진 자리마다
애기들 눈동자를 읽듯
읽어내고 있네
'시' 카테고리의 다른 글
폭염 / 이영주 (0) | 2019.03.24 |
---|---|
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/ 안상학 (0) | 2019.03.24 |
슬픈 환생 / 이운진 (0) | 2019.03.24 |
흰 바람벽이 있어 / 백석 (0) | 2019.03.24 |
다정이 나를 / 김경미 (0) | 2015.12.20 |